2008. 5. 1. 17:02

바람피기 좋은 별자리

"내 인생 최고의 실수는 물고기자리 남자들하고 연애했다는거야."
"평소에 가만히 있다가 뭔가 뻘짓을 할 때는 유감없이 연락오는 그거 말이지?"
"맞아. 그 직감 정말 무섭다니깐... 내가 뭐 딴짓을 할 수가 없어요. 어디 바람피기 좋은 별자리 없을까?"
"글쎄다... 굳이 그런걸 찾을 필요가 있을까?"


굳이 J의 불평어린 투정이 아니더라도, 물고기자리에게 탁월한 직감의 소유자라는 꼬리표를 붙여주는게 세간의 입장인 것 같다. 물론 천궁 12도 중에서 가장 공명(resonance)에 능한게 물고기자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물고기자리가 그리 직감이 탁월한 축에 속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물론 당신의 물고기자리 애인이 당신이 다른 남자 혹은 다른 여자를 만나는 순간 귀신같이 알고 전화를 하는 건 사실이고 또 놀라운 일이지만, 그건 그들이 탁월한 직감으로 순간 포착을 해냈다기 보다는 짧게는 하루 이틀 전 길게는 몇 주 전부터 느낀 수온의 변화를 통해 사전에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뿐이다. 물고기자리는 미리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는 것이지 정확한 직감으로 순간 반응하는 쪽은 못된다.


가공할만한 직감의 소유자라면 오히려 전갈자리 쪽이 탁월하다.


그는 너무 골똘하며,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침울하다. 그의 몸은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불행을 예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불행이나 죽음의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킁킁대며 몸을 바짝 곧추세운다. - 김은하, 전갈자리의 사랑 중


불행을 예비하는 별자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전갈자리의 불행에 대한 직감은 거의 선수급이다. 그들은 물고기자리처럼 미리 준비하는 법은 모른다. 물론 물고기자리 다음으로 공명에 능한 별자리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에게 예민할뿐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정말 본능적으로 불행을 감지해낸다. 적어도 자기 앞에 닥친 불행을 느끼는 직감에 관해서는 전갈자리를 능가할 별자리는 없다. 그들은 정확히 위기의 시점을 파악하고 바로 위기의 장소로 달려간다. 가히 본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불행에 대한 그들의 육감은 불행히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다행이라면 - 혹은 그들에게는 불행이라면 - 하늘은 참 공정하게도 그들의 이런 직감이 오직 그들의 불행에 한정해 작용하도록 설계해 놨다는 점이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그들의 불행은 찾아내지만 그들앞에 놓인 행복에 대해서는 거의 백치수준으로 감을 잡지 못한다. '나는 5분후 그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는 물고기자리 O양의 말은 전갈자리는 죽을때까지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늘이 이런 배려를 하지 않았다면 세계의 모든 주식 갑부는 다 전갈자리일게다.


물의 별자리는 이렇든 감성적 측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건 같은 물의 별자리라도 게자리는 거의 이런 센스가 없다. 풍부한 감성을 가진 게자리이지만 게자리의 이런 감수성은 유감스럽게도 철저히 내면화되서 적용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앞에 놓인 행복도 불행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게자리가 연애의 약자가 되는 이유는 그들이 지나치게 헌신하는 탓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늘 끌려다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바람피기 좋은 별자리 - 바람의 상대로서가 아니라 애인으로서 - 라면 단연 쌍둥이자리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우정과 애정의 경계를 고민하기보다는 순간적 쾌락을 즐기는 타입들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다수의 이성을 부담없이 만날뿐더러, 자기 애인이 그러는 것에도 상당히 무감각한 편이다. 더욱이 쌍둥이자리는 직감 또한 매우 둔감한 편이라서 속여넘기려고만 한다면 충분히 쉽게 속여넘길 수 있다. 비슷한 유형으로는 사수자리도 그렇다.


사수자리 역시 상당한 쾌락주의자라서 사수자리 애인은 자기 애인이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에 크게 꺼리낌이 없다. 다만 사수자리는 쌍둥이자리보다는 직감이 좀 나은 편이라 나름의 위험감수는 해야할 것이다. 어쨌거나 이 두 별자리는 바람을 피움에 별반 터치를 받지 않을 뿐더러 들켜도 싹싹 빌면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별자리이기도 하다.


반면 정말 둔해서 눈치 자체를 못채는 별자리로는 흙의 별자리들이 있다. 염소, 황소, 처녀로 이어지는 이 별자리들은 거의 직감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속이는 것은 무한도전식의 몰카기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이다. 다만 주의할 것은 흙의 별자리에게 일단 걸리면 용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람의 별자리인 쌍둥이자리는 기분나쁘지만 봐준다라는 말을 하고, 불의 별자리인 사수자리는 한 번 욱하고 성질은 내도 어쨌건 용서는 해주는데 비해 흙의 별자리에게 배신은 전갈자리에게 있어서 그것처럼 절대 용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위험 감수는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