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7:07

당신이 아직도 솔로인 이유

당신이 아직도 솔로인 이유

슬슬 찬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분다는 것은 여름이 간다는 뜻이고, 여름이 간다는 것은 가을이 온다는 뜻이고, 가을이 온다는 것은 겨울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당신은 36.5도의 생체난로를 이미 장만한 커플족이거나, 아니면 눈뜨고 차마 못 볼 여름철 행락지의 만행을 겪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솔로임에 틀림없다.


각성하라, 그대 솔로여! 이번 겨울에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제 맛이라며 자신의 주변머리를 인간미로 미화할 것인가. 닭살을 넘어 오한이 나게 만드는 커플들의 반인륜적 작태를 보며 '염장질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 뿐' 이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 것인가. 다시 보온병만 으스러져라 움켜쥘 것인가. 가을을 맞이하는 솔로들의 등줄기에는,
솔로의 원조 격으로 추앙받는 고구려 제2대 유리황의 사언절구가 흡사 세기말적 예언처럼 서늘하게 울려 퍼진다. '외로워라,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가슴이 철렁하고 등골이 오싹하지 않은가. 서두르자.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점성학의 이론적 배경에는 서양 철학의 '4원소론'이 등장한다. 흙, 물, 불, 공기라는 4원소의 경향에 따라 열두 별자리는 네 그룹으로 나뉜다. 먼저 흙의 별자리에 속하는 것이 염소자리, 황소자리 그리고 처녀자리다. 다른 원소에 비해 가장 물질적인 존재성을 가진 흙은, 이 세 별자이에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현실주의자의 기질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이 현실주의자들이 커플로 전향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은 너무 피곤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현실주의에 입각한 분별력은 놀라운 데가 있다. 남들은 하고많은 세월을 넘어지고 깨져야 알아차리는 '사랑의 유해성'을 단박에 짚어 내다니. 그들의 판단이 맞긴 맞다. 사랑은 정말 피곤하다. 그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삶과 건강을 파산 상태로 몰아가는 일종의 질병이다. 그래서 흙의 별자리인 염소자리, 황소자리, 처녀자리에게서 놀라운 것은 그들이 사랑을 안 한다는 점이 아니다. 그들도 (현실적으로 보자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사랑을 원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혹시 사랑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획득하게 되는 영적 자본 내지는 영혼의 부동산이 아닐까? 하지만 '열두 별자리별 사랑의 의미'는 연말연시용으로 아껴두기로 하자. 이 글의 사명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솔로로 남을 수밖에 없는 철학적인(?) 문제를 규명함으로써 커플 탄생의 초석을 다지는 데 있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사랑이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리는 황소자리인 경우가 가장 농후하다. 원래 인생을 느긋하게(또는 게으르게) 즐기고 싶어하는 기질이 왕성한 이들로서는 소개팅에 부지런히 나간다든지, 이성의 기분을 고려해 모양을 낸다든지, 낯선 사람 앞에서 한 번으로 족할 호구조사를 반복하는 걸 몹시 귀찮아한다. 감나무 아래 누워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셈이니, 하드웨어가 몹시 받쳐주면 모를까 불꽃같은 연애는 확률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냥 오랫동안 근처에 있던, 식구같이 편한 이성과, 꼬박꼬박 적금 붓듯 만나 곗돈 타듯이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염소자리의 경우는, 현실주의자들이 갖는 사랑에 대한 회의는 기본이고 여기에 매사 발전 속도가 더디다는 특징이 결합되어 발생한다. 그들은 자신의 매력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것을 가꿀 줄도 모른다. 남녀 불문하고 서른 살 이전의 염소자리들은 칙칙하고 앞뒤 콱 막힌 고시생 같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다. 염소자리는 서른 살이 넘어 개화하기 시작해 마흔이 넘으면 굉장히 멋지게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당신이 만약 염소자리라면 결혼을 가능한 한 미루는 것이 좋다. 나중으로 갈수록 멋진 배우자가 나타날 테니까!


처녀자리의 문제는 특유의 결벽증에 '걱정도 팔자'인 경향이 보태져서 나타난다. 그들은 가지런한 책장 같은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어지럽혀질까 두려우한다.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했다가는 타인이 책의 분류도 무시하고, 높낮이도 무시하고, 시리즈의 순서도 다 헝클어뜨리고 말리라는 공포가 그의 무의식에는 잠복해 있다. 때때로 그 두려움은, 여자 처녀자리의 경우 '남성 혐오'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흙의 성좌들이 솔로로 남는 까닭이 '현실성 과잉'에서 비롯된다면 불의 성좌들이 갖는 공통적인 문제는 반대로 '열정의 과잉'에서 빚어진다. 양자리, 사자자리, 사수자리, 이 세 별자리들은 사랑하고픈 대상이 '너무 많거나 너무 높아' 변변한 이성친구를 만들지 못한다.


사수자리는 아이콘이 말해주는 대로 쉴 새 없이 사방으로 활을 쏘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의 사랑 고백을 받지 않은 사람이 인근에 별로 남아 있지 않을 지경에 이른다. 모든 사람이 다 금덩이로 보이는 못 말리는 낙천성 때문이니, 사수자리라면 애초에 목표물을 분명히 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


양자리의 경우는 좀 가볍게 표현하면 '팬클럽 소녀 신드롬'이다. 연결이 불가능한 이성을 줄기차게 동경하는데, 막상 상대로부터 반응이 오면 갑자기 시들해진다. 전사의 기질상 이미 확보한 목표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다. 너무도 쉽게 싫증을 내니 건수는 많지만 유지가 안된다. 사자자리는 타고난 '자뻑 증세'가 문제다. 자신을 여왕이나 황제라고 생각하며 그에 어울리는 파트너를 구하니 커플
만들기가 요원하다. 결국에는 겉은 화려하지만 실속은 없는 상대에게 빠지거나, 황제나 공주 대신에 그들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켜주는 몸종형 애인을 곁에 두는 경향이 있다.


물의 원소가 발달한 별자리는 게자리, 전갈자리 그리고 물고기자리다. 사실 이 물의 별자리들이야말로 사랑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며, 하찮은 연애가 아니라 숭고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만약 이 별자리가 발달했는데도 아직 솔로라면 지나치게 감성적인 탓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사랑은 자주 느끼지만 '나를 상처입히고 말 거야'라는 두려움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는 데 인색하다. 게자리는 자신의 매력을 과소평가하며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전갈자리는 특유의 폐쇄성으로 '누가 나 같은 걸 사랑하겠어?'라며 세상을 향해 단단히 빗장을 건다. 또 물고기자리는 고질병인 '의지 박약'으로 황소자리식 귀차니즘을 비슷하게 반복한다. 물고기자리의 연애는 머릿속에서만 맴돌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거기 사랑이 있었다는 것은, 타인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는다.


이제 공기의 원소를 이야기할 차례다. 쌍둥이자리, 천칭자리 그리고 물병자리가 여기에 속한다. 흙의 성좌가 현실성을, 불의 성좌가 열정을, 그리고 물의 성좌가 감성을 대변한다면, 공기의 성좌는 지성을 대변한다. 그것은 사회의 상식이자(쌍둥이자리), 균형감각이고(천칭자리), 창의적인 과학정신(물병자리)이다. 공기의 성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세 요소는 모두 대화와 소통, 사회적인 확산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공기의 성좌를 가리키는 다른 말은 '관계의 성좌'다. 이만하면 관계지향적인 이들의 성향상 솔로일 확률이 극히 낮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라면?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뜨거운 건 싫어!'천칭자리라면 자신의 아이콘이 나타내는 대로, 양손에 떡을 쥐고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망설이며 결정을 끊임없이 유보하고 있을 것이다. 더 좋은 카드가 나타날지 모르는데 왜 지금 결정해야 한단 말인가. 쌍둥이자리라면 가볍고 유쾌한 대화 파트너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탓에 상대에게 이성이라는 면을 어필하는 데 장애를 겪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정과 사랑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물병자리도 비슷한 장애를 겪는데, 그들은 쌍둥이자리보다 한술 더 뜬다. 물병자리에겐 남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은 필요치 않다. 그들에게 사랑은 지성의 환풍구이며, 서로의 다른 생각을 즐기는 방법이다. 그들의 성감대는 두뇌다. 그러니 상대가... 꼭 이성(異性)이 아니라도 좋을 것이다.


물병자리에 이르러 사랑은 인간의 고정된 육체성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남녀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며, 커플이라는 이름의 배타적인 그룹의식으로 서로를 소유하는 방식도 느슨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누가 누구를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가.' 문병자리는 그 생각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달콤한 착각을 선사할 것이다. 사랑은
만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거라고. 지난 날 내 호주머니에 들어온 그대의 손이 그런 착각을 행복하게 입증시켰듯이.


김은하, wasavi@empal.com


**서양 점성술에서는 태양을 비롯해 수성, 금성 등 10행성의 위치를 가지고 사람의
운명을 예측합니다.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별자리 외에 모종의 끌림을 주는
별자리가 있다면 그것 역시 당신에게 발달한 별자리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