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6:05

황소자리의 감각적 사랑

사랑의 형이하학

눈과 귀와 코와 피부와 혀끝으로 사랑하는 황소자리들


나는 아주 둔감한 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먹는다는 건 내게 건전지를 갈아끼우는 것 같은 귀찮은 노동이 되곤 한다. 시장기가 여러 차례, 마치 보채는 아이처럼 위장을 재촉하고 나서야, 나는 마지못해 메마른 식욕을 아무렇게나 채워 넣는다.


혼자 차려 먹는 밥상은 가난하기 짝이 없다. 쟁반 하나 규모를 넘지 않는 음식들을 책상 위에, 그 어수선하게 펼쳐진 책들 위에 그대로 올려놓고, 더 심하면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선 채로 때워버린다.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면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허겁지겁, 꾸역꾸역, 황급히 삼켜버린다. 음식은 코를 들뜨게 하지 못하고, 침샘을 골고루 자극하지 못하고, 혓바닥에도 쫄깃하다거나 퍼석하다거나 뭉클거린다거나 하는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한채, 식도로 넘어가 버린다. 위에 부담을 주니까 건강에 해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개선의 여지는 별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야,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요즘에 와서야, 내가 인생의 나머지 것들도 허겁지겁 무감동하게 삼켜버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늘 그 다음 것. 그 다음 것에 정신이 팔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스타일.


이를테면 그 애와 처음 손을 잡았을 때, 단둘이 강가로 놀러 갔을 때, 어둑어둑해지는 강물 위에 너무 예쁜 야광 찌들이 하나 둘 반짝이는 걸 봤을 때.... 아아, 나는 왜 더 행복해지지 못했을까. 무감각하게 흘려보낸, 내 인생의 분홍 장미꽃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그 순간을 음미할 것을...


또한, 단지 음식을 즐길 줄 아는 것만이 다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영화<담포포>의 라면 달인에게 라면 먹는 예절부터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말해준다.


"먼저 그릇부터 관찰하여 모양과 향기를 음미하고, 위에 고명으로 얹은 것들을 잘 살핀 뒤, 젓가락으로 국물 표면을 가볍게 저어 라면에게 호의를 표하고, 돼지고기를 살짝들어 국물 오른쪽 밑에 두는데, 이 때 돼지고기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곧 뵙지요' 라고 사과한 뒤 라면을 먹으면 됩니다. "


이 느긋함, 여유. 인생을 아주 깊숙히, 그리고 풍부하게 음미할 줄 아는 재능. 난생 처음으로 나는 이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쿠바산 시가의 맛과 햇포도주의 향, 부드럽고 웅장한 자동차 엔진 소리에서 생의 환희를 느끼는 황소자리의 사람들 말이다.


문제는 황소자리 사람들이 무엇 하나 아쉬운 것 없는, 화사한 봄의 정점에서 태어났다는 데 있다. 사월하순에서 오월중순은 설익어 드센 봄도 아니고, 맛이 가려고 하는 따분한 봄도 아니다. '봄' 하면 머리속에 바로 떠오르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그 봄, 고분고분하고 다정하고 말랑말랑한 봄. 그 봄에, 한껏 보드라워진 (어느 시인은 살진 젖가슴같다고 햇으렷다) 대지는 고소한 흙냄새를 품어내고, 해골같던 겨울나무들은 무성해져 젊은 날의 아버지처럼 당당하고 늠름해진다. 그 대지와 신록의 향기를 머금고서, 바람은 남녘에서 불어와 사람들의 뺨에 먹지 않아도 배부른 흐뭇한 미소를 새긴다.


하지만 아직 취하기는 이르다. 봄바람의 자연 첨가물들은 그게 다가 아니니까. 겨우내 상심한 미각을 일으켜 세우는 앵두나 어린 딸기 같은 햇과일들은 또 어떻고. 앞을 다투어 피어나는 제비꽃이며 민들레며 철쭉이며 목련이며 복사꽃, 배꽃, 모란, 자운영. 하다못해 배추꽃, 무꽃들은 또 어떻고. 그 뿐인가. 그 바람은 꾀꼬리와 종달새의 지저귐도 실어 나른다.


황소자리는 바로 그 오월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봄날의 따스하고 향락적인 훈풍을 영혼에 저장하고서 태어난다. ( 같은 이치로, 처녀자리는 수확철의 바쁜 노동을, 전갈자리는 만추의 죽음을, 염소자리는 엄혹한 겨울날의 우울과 인내심을 강박관념처럼 지니고 살아간다. )

그들이 태어나자마자 경험하는 것은 오월의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다. 자연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기와 맛과 감촉과 소리들. 자연은 그들의 오감을 어느 별자리보다 예민하고 섬세하게 발달시킨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말은, 사실 황소자리에 대한 수식어로는 적절치 못하다. 어딘가 처녀자리적인 신경질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들의 민감함은 "완두콩 공주 - 두꺼운 요를 겹겹이 쌓아올리고도, 맨 밑바닥에 있는 완두콩 한 알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는, 안데르센 동화의 공주 말이다." 의 까탈스러움이 아니라, 사물의 디테일까지 충분히 음미하고자 하는 느긋함에서 나온다.


그들은 감각적인 쾌락을 정말로 사랑한다. 황소자리들은 사수자리가 이상적인 계획에 고무되어 가슴이 부풀 때, 물고기 자리가 뜬눈으로 백일몽에 취할때, 구체적이고 명료하고 손에 잡히는 것들만을 꿈꾼다. 가령 갓 짜낸 고소한 양젖이라든지, 핏물이 탐욕스럽게 배어 나오는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라든지, 처녀들의 탄력 있는 걸음걸이, 또 그 경쾌한 하이힐 소리라든지, 몽고산 캐시미어 머플러의 포근한 감촉, 우연히 같이 우산을 받쳐 쓰게 된 그 사람에게서 나는 청결한 비누냄새 같은 것 말이다.


그의 인생은 감각으로 완성된다. 감각할 수 없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만족감도 주지 못한다. 이상이라든가, 영혼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지성 따위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먼저 구체적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도 통한다. 대상을 마음껏 감각하는 일은 소유하고 있어야 가능하니까.


당연히, 사랑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이 멋진 말은 마치 물고기 자리와 황소자리를 위해 태어난 듯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몸이 있는 탓에 이렇게 너와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몸이 없다면 어떻게 너를 만져볼 수 있었을까?"라는 말이다. 물고기 자리의 성향이 농후한 나는, 쉼표를 기준으로 앞의 구절에 부리나케 공감을 일으켜, 이어지는 뒷문장을 채 읽기도 전에 통증으로 쓰러지고 싶은 수준이 되지만 (물고기자리가 평생 괴로워하는 것은 대상과의 분리감이며, 그들은 분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코올 따위로 육체와 정신을 허물어뜨린다)


아마도 대부분의 황소자리들은 앞구절은 그저 데면데면 읽다가 뒷구절에서 '옳거니'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황소자리에게 사랑이란 ( 그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 몸으로 실감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아주 분명하게, 그가 상당히 육감적인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황소자리는 확실히 관능적이다. 하지만 그의 관능은 전갈자리나 염소자리처럼 한이 많은 인간들이 발산하는 어둡고 통렬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건장한 근육과 활기찬 피부와 생명력 넘치는 땀방울 들이 빚어내는 믿음직하고 유쾌한 탄력, 그것이다. 황소자리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한 섹시함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건조한 대지에서 '훅-' 하고 피어오르는 흙내음을 닮았다. ( 그것이 얼마나 친근하고 따스하고 에로틱한 냄새인지 당신이 알고 있기를! )


하지만 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는 말이, 꼭 관능적인 실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황소자리에게 추상명사가 아니다. 사랑이란 곁에 있고, 손을 잡고, 목소리로 서로의 귀에 밀어를 들려주고, 밤이 깊으면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눕는 것이다. 참으로 명료하지 않은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골치를 썩이지 않을 수도 있다니!


그들은 서로 사랑하시나요?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저는 30년동안 남편의 옷을 빨고, 식사를 마련하고, 세 아이를 낳았지요. 그이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들에 나가 농사를 짓고, 겨울이면 사냥을 하고, 매일 저녁마다 제가 만든 수프를 먹고 잠들었어요. 제가 만든 수프에 마른 빵을 적셔 먹는 걸 무엇보다 좋아했지요. 그 이상은 모르겠군요."


황소자리의 시즌에 벌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이벤트는 미인대회와 결혼식이다. 아름다움은 36-24-36 이라는 '손에 잡히는' 조형미로 판가름 나고, 젊은이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를 손에 넣는다.


그래, 우리는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이따금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 안달을 한다. ( 마치 소유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 서로에게 소속되고 싶어 발버둥을 치고, "나는 당신의 것이에요"라는 고루하고 한심한 - 하지만 사랑한다는 애매한 말보다 확실히 피부에 와 닿는 - 선언을 하기도 한다.


뿌리 없이 표류하는 것이 두려워서, 우리는 정착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는 그대와, 증인이 서명한 혼인 신고서와, 은행 빚으로 산 집과 자동차에 갇혀, 확실한 세속의 인간이 되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이 땅에 깊이깊이 뿌리 내리고 싶은 것이다.
햇빛과 바람을 먹고서, 탐욕스럽게 몸집을 키우는 오월의 나무들처럼.

글 - 페이퍼 김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