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6:10

양자리의 저돌적인 사랑

사랑은 둘러가는 법을 모른다

서투르고 성급하고 사나운 에고이스트, 양자리의 사랑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병자리 시즌이면 사람들은 물병자리처럼 되고, 물고기자리 시즌이면 알게 모르게 물고기처럼 논다. 열두 별자리라는 사이클은 그냥 맥없이 갖다 붙인 게 아니라, 순환하는 우주의 리듬을 그 나름대로 해석한 상징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월이 오면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물병자리다워진다. 어두웠던? 과거는 싹 잊어버리자고 말하며, 자기의 삶을 개혁해 보겠노라고 전에 없이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낸다. 새 달력을 사고, 새 플래너를 사고, 새 다이어리에 다짐을 옮겨 적는다.


올해는 담배를 끊겠다. 무슨무슨 자격증을 따겠다. 새벽 영어회화반에 등록하겠다. 나만 해도 해가 바뀌며 한 권의 다이어리와 세 권의 플래너를 샀다. ( 나는 플래너를 약간 광적으로 좋아하는데, 그건 보기만 해도 내 어수선한 삶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선천성 처녀자리 결핍증을 달래는 데 특효라고나 할까? )


나의 야심찬 신년계획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페이퍼 마감을 엄수하여 사랑받는 필자로 다시 태어나자! ' 그런데 마감시간을 이미 넘겨버렸으니 너무나도 자괴감에 빠진 나머지, 이제는 연로하신 사부님께 전화를 드려 원인규명 및 점성학적 비방을 잠시간 독촉하기까지 했다. 또 페이퍼와 나와의 궁합 차트를 세삼스레 그려 보기도 했다. ( 황경신 편집장을 중심으로 구성원들과 나와의 궁합 차트를 그리다 보면, 대충 필자로서의 나의 운명이 나온다. )


말을 할수록 창피하기만 할 뿐이니, 이쯤 해서 입을 다물어야 겠다. 비장의 무기, 페이퍼 마감전용 바이오 머리띠( 좌우에 옥이 들어간 수험생용 인데 쓸만하다 ) 를 질끈 묶고, 나는 다시 쓴다.


이야기가 좀 샛길로 빠졌는데, 내가 원래 하려던 말은 물병자리가 잊으려 했던 과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는 거였다. 혁명은 삼일천하가 되고, 물병자리식 출발은 이내 복병을 만난다. 팽팽하던 풍선을 탁 터뜨리는 것도 아니라 슬금슬금 바람을 빼서 저도 모르게 김새게 만드는 별자리,물고기 자리 시즌이 닥치는 것이다. 2월은 아주 요상한 달이다. 날짜도 그깟 30일을 못 채우고 하는 둥 마는 둥, 슬그머니 사람들을 멍청하고 몽롱한 가수면 상태로 이끌고 간다.


만사에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고, 삶을, 세상을, 나를 갈아 엎어 보겠다고 뾰족하게 뛰쳐 나왔건만 어느새 사지에 스멀스멀 힘이 빠지고, 흐름에 몸을 맡긴채 '되는 대로' (이상적인 경우 유유자적) 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두번째 반란이 시작된다. ( 열두 별자리라는 게 원래, 앞의 성좌의 결실을 수렴하면서 단점은 극복하려는 '도전과 반항의 12인 계주'다. 그래서 흔히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이웃한 성좌는 서로 비슷하지도 사이가 좋지도 않다. )


이번에는 아예 전쟁이다. 삶을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려는 전쟁. 좀비처럼 몽롱한 상태( 그게 물고기자리니까)를 박살내려는 전쟁. 전쟁의 신 마르스가 당도하셨다. 자, 진격이다(March)!


굳은 땅을 부수고 돋아나는 3월의 새싹들은 얼마나 씩씩하고 용감한가. 그것은 땅이건 바위건 가차없이 밀어낸다. 자기밖에 모르는 순진한 공격성. 그는 살아야겠으니 젖을 내어놓으라고, 다짜고짜 어미의 젖꼭지를 물어뜯는다. 어미가 굶주려 죽어가는지 어떤지는 살필 겨를도 없이...


생명이란 본디 이기적인 것이다. 또 그것이 마땅하다. 이기심이란, 신께서 목숨 붙은 것들이 각자 제 목숨 단속 잘하라고 불어넣으신 습성이니까. 이기심 또는 개체의식이 강할수록 진화에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며, 먹이 피라미드의 상층부로 올라간다. ( 개미, 바퀴벌레 등은 개체의식이 없다는 것을 무기로 왕성한 생존력을 자랑하는 드문 케이스이다. )


그러므로 인간이 유구한 진화의 역사에서 거둔 이 놀라운 성공은, 모두 그의 탁월한 에고이즘에 공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천적은 오로지 인간 뿐이다. 그러자 사람들의 이기심은 이제 '공생'을 이야기한다.


양자리는 갓 태어난 신생아 같고, 굳은 대지를 막 뚫고 나온 새싹 같다. 그것들은 얼마나 대책없이 용감한가. 세상의 모든 '새끼'들은 무턱대고 태어난다. 아기 아빠가 죽었건 살았건, 우유값을 댈 형편이건 아니건, 옆에 아기를 받아줄 사람이 있건 없건,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제 기분 내키는 대로 태어난다.


문제는 지가 지금 태어나고 싶고, 태어나야 겠다는 것이다. 제 엄마는 기를 처지가 못돼 고아원에 버릴 무서운 마음을 먹고 있는데도, 죽을 힘을 다해 껍질을 깨고 나와봐야 뙤약볕만 내려 쬐는 사막 한복판인데도 말이다.


양자리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자기밖에 모른다. 남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상황봐서 태어나거나 하지 않는다. 얻을 내일이 없는데도, 오늘 당장 시작한다. 그 무모하고 조급하고 사나운 열정, 타협하지 않는 주장, 그것이 양자리의 힘이다.


그래서 그는 전사다. 제 아비인 마르스의 '욱'라는 성미를 그대로 이어받은 그들에게 있어 ( 양자리의 수호성은 화성, 마르스다. ) 투쟁은 살아가는 방식이고 힘의 원천이다. 평화로운 일상에서라면, 전사는 살아갈 의미도, 보람도 느끼지 못한다. 돈키호테처럼, 그리고 아주 이상적인 경우 잔다르크처럼, 그는 매섭게 채찍을 후려치며 적진을 향해 달려간다. 그것이 설령 죽을 자리라 하더라도, 그는 한시도 기다리지 않는다.


한번도 참지 않았다. 손톱만큼 사랑이 치밀어 오르면, 손톱만큼 다 사랑하고 치워버렸다.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살살 다독여 제 마음 속에서만 들여다 보고 지워버린다든지, '이걸 해, 말아?' 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지? 좋아하면 연애하면 되고, 다 좋아했으면 해어지면 되는 게 아닌가. 무슨 손해가 그렇게 많다고, 대체 얼마나 가진 게 많길래 사랑 앞에서 그렇게들 소심을 떨까.... 그렇게 생각했다.
알고 보면 저도 대책없이 소심한 주제에.... 나는 이상하게 사랑 앞에서만 사납고 무모했다. 이것저것 따지고 재볼 염두도 없이 무턱대고 돌진했다. 풍차를 향해 달려들던 돈키호테처럼...


그래, 너랑 살 자신은 없지만 죽을 자신은 있다. 그게 내 사랑이다. 우리 같이 죽자, 그렇게 말해주었다. 애인들은 감탄했다. " 너 뭘 믿고 그렇게 용감하니?"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내 사랑은 벌써 끝이 보였다. 차근차근 열어 보이지 못한 내 사랑은 그새 바닥이 보였다. 내 마음은 급속하게 타올라 급속하게 식어 버렸다.


사랑으로 부푼, 애인의 활짝 펼쳐진 동공을 보는 순간, 내 사랑은 의욕을 잃었다. 아아 사랑이, 일탈의 격정에서 일상이 되는 소리.... 손잡고, 껴안고, 키스하는... 갈 길이 뻔한 일과가 되어버리는 소리... 그 끔찍한 소리가 싫어서 나는 얼마나 힘껏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아야 했는지.....


양자리 기질을 타고난 내 연애의 교사는 리즈 테일러다. 여덟 번 결혼하고 이혼한 그녀의 가십 기사를 여학생 잡지에서 보던 중학생 계집애는, 그것을 자기의 결혼관으로 삼아 버렸다. 무엇보다 단순 명쾌하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 사랑하면 결혼하고, 싫어지면 이혼한다. ' 솔직하다 못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긴 했지만... 사랑이 끝났는데도 같이 사는 건 ' 무책임 ' 보다도 더 불순하게 느껴졌다. 장사치들의 거래도 아니고 뭐냐는 생각에서였다. 나중에야 리즈 테일러의 금성이 양자리에 있으며, 또 양자리의 수호성인 화성이 나처럼 물고기 자리에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사랑이 무책임한 자유의 아들이 되길 바랐다. 욕망( 사랑 )을 향한 우회 없는 ( 그래서 후회도 없는 ) 직선 달리기. 그래서 양자리의 사랑은 속전속결이고, 임전무퇴이고, 파죽지세이고....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그것은 거칠고, 도전적이고, 격정적이고, 화끈하면서, 후련하게 짧다. ( 그 상태로 오래 버티다간 아마 수명이 반으로 줄 테니까 )


맞다. 양자리의 사랑은 전쟁이다. 그것은 사랑의 본래 속성이기도 하다. 사랑은 수많은 경쟁자와 싸워야 하며 수많은 장애물을 이겨 낸 끝에 얻어내는 전리품이니까.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애인 자체가 구애자에게는 맞서야 할 적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법이니까. 냉담한 애인은, 철옹성을 쌓고 똬리를 튼 적군만큼이나 밉살맞지 않던가.


너무나도 미운 나머지... '언젠가는 내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사랑을 구걸하게 만들고 말겠다.'는 전의가 솟구치지 않던가...


양자리는 고백이 아닌 선전포고를 한다. 사랑이여, 항복하라! 하지만 백기를 들고 항복한 순간 ( 그러니까 구애를 받아들인 순간 ) 그는 승리감의 짧은 절정을 맛보고는 무기력해진다. 사랑은 지리멸렬해진다.( 물론 이제부터가 사랑의 참맛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

그는 하품을 하기 시작한다.이미 포획된 사냥감을 ( 좀 안된 표현이지만 ) 삶든지 튀기든지 볶든지 하는 것은 전사가 할 일이 아니다. 그의 가슴은 새로운 스릴과 서스펜스를 원한다.


세상에... 너무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것 아니냐고? 하지만 사랑은 원래 이기적이다. 더군다나 이성애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변형된 자기애. 남의 입술을 빌어 자기 목에 키스하려는 끈질긴 욕망일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기적이지도 무책임하지도 않은 사랑을 원하신다면?


그런 당신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보험'에 들 것을 권한다. 착실하고 믿음직한 흙의 성좌들과 말이다. 그들의 이름은, 처녀자리, 염소자리, 그리고 황소자리, 어서 혼인신고에 서명하시라.


이로서 자유연애는 끝났다.



글- 페이퍼 김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