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6:23

별자리 사랑의 개성

내 사랑의 개성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일생에서 맞이하는 가장 개성적인 사건이 아닐까?


그 사람이 내 사람일 수밖에 없고, 내가 그 사람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 사실, 사랑에 그것 말고 다른 무슨 이유가 있을까? 나머지는 모두 변명, 핑계, 군소리 일뿐.


다른 사람에게는 매혹은 고사하고 아무런 관심거리 조차되지 못하는 사소한 모습. 이를테면 지하철을 기다리며 무심히 책장을 넘기는 깡마른 손가락 따위가 유난히 눈에 크게 밟히면서 사랑은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시작되어버린다. 그러고는 정처 없는 길을 향해, 사랑은 막무가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시작이 그런 것처럼, 사랑의 행보는 속수무책이며 유일무이하고, 그런 점에서 운명적이다.


이번 주제는 사랑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 즉 “우리가 가진 사랑의 개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가진 사랑이 각각 어떤 빛깔과 향기와 독성(!)을 갖고 있는지 별자리에 기대어 알아보기로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누군가를 각별히 위하는 마음이라면 “상대에 대한 배려”는 그 사랑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짧은치마를 입은 그녀의 무릎을 손수건으로 덮어주고 싶은 마음. 비뚤게 채워진 단추를 다시 옳게 채워주고 싶은 마음. 사랑은, 누군가가 느끼는 불편이 내 것만큼이나 크게 느껴져서 그것을 덜어주지 못해 안달하게 되는 마음이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준을 적용해서는 곤란하다. 양자리와 물병자리의 경우, 이들의 사랑을 그런 기준으로 측정하려고 했다가는 영원히 합격점을 넘기지 못하고 말 것이므로.


누군가를 배려하는 데는 섬세한 관찰력과 다정다감함이 필요한데, 양자리의 조급하고 맹렬한 사랑에는섬세한 주의력이 깃들기 어렵고, 물병자리의 쿨한 동지애에는 자잘한 애정 표현이 자라날 만한 정서적 습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사랑을 성급히 불량품 취급하면 안 된다. 문제는 사랑의 부족이 아니라 사랑의 개성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섬세한 배려”에서 낙제점을 받은 양자리와 물병자리가 바로 그 다음 항목인 “열정적인 매너”에서 무난히 합격점을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열정적인 매너”에서 요주의 대상으로 꼽히는 별자리는 황소자리, 처녀자리, 염소자리 그리고 물고기자리이다. 앞의 세 별자리들이 공통점은 모두 흙의 성좌라는 것.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매사 신중하다는 장점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단점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들의 단점을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물고기자리는? 물고기자리의 열정 부족은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탓에 어느 것 하나 먼저 나서서 주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렇다고 사랑의 농도가 부족하다고 의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헌신성”의 점수도 점수이지만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의 미덕에서 물고기자리를 따를 별자리는 없다. 오로지 무리가 근심해야하는 것은 “배려”와 “열정”에서 수준 이상의 솜씨를 보여주는 쌍둥이자리가 왜 “헌신성” 에서는 적색 경보를 발하고 말았느냐는 점이다.


그의 자상한 배려와 적극적인 열정에 고무되어 의심의 경계를 풀고 사랑의 각오를 다잡았던 이라면,
헌신성을 발휘해야하는 순간 뒤로 물러 나버리는 쌍둥이자리의 이중적인 태도에 심각한 내상을 입지 않을까.


**물론 그것을 “인격의 결함”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모든 단점이 장점의 그림자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사랑의 영역”에서 어떤 개성은 분명히 일종의“핸디캡”처럼 작용하곤 한다. 사랑을 기대하며 다가온 이들에게 참담한 실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쌍둥이자리와 물병자리다. 두 별자리에겐 “헌신성”과 “소유욕”이라는
두 항목에서 낙제점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것도 싫어하고 누군가가 한없이 자신에게 헌신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또,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도 싫고 반대로 누군가가 생활을 간섭하며 소유하려 드는 것도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헌신과 소유를 뺀다면 사랑에 대한 어리석고도 낭만적인 이상은 충족될 수 있을까. 그것은 너무나도 끈질기게 일어나는 바람들이라서 어리석은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기 어렵다.


처녀자리에게도 비슷한 핸디캡이 있다. 매사 명석하고 분석적인 그에게서 사랑의 황홀경과 낭만을 얻어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메마른 열정과 앙상한 관능과 녹슨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과의 사랑은, 딱딱하고 차가운 침대에서 끊임없이 깊은 잠을 청하려고 노력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러니 부디, 딱딱한 침대에 매혹 되어버린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만이 그에게 접근할진저!


하지만 전갈자리와 게자리의 문제는 쌍둥이자리와 물병자리의 정 반대편에 도사리고 있다. 끝없이 퍼붓는 헌신과 온몸을 결박할 듯한 소유욕 그리고 바늘 끝 만한 의혹에도 전신을 파르르 떠는 민감함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가 되면 질식할 것같이 숨이 막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부디, “너무 사랑하는”이들의 마음을 갖고 장난질하지 말기를! 가벼운 연애를 할 작정이라면 쌍둥이자리라든지 양자리, 사자자리, 사수자리는 천칭자리를 찾기를.


그리고 한가지 더. 전갈자리와 게자리는 <킬 빌>등을 비롯해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판타스틱하게 잔혹한”사랑의 복수를 발휘할 줄 안다는 점도 명심하기를...


***그렇다고 해서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별자리들이라고 흠 없고 티없는 사랑의 천사들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황소자리는 권태로운 안정감과 소유욕이라는 불씨를 갖고 있고, 사수자리는 기준 미달인 질투심과 소유욕이 이미 모종의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또 천칭자리는, 대부분의 항목에서 “기본 이상만”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상쩍기 짝이 없다. 그의 사랑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것이기 십상이다. 사랑에서, 영혼과 영혼이 부딪치는 강렬한 교류를 원했던 사람이라면, 천칭자리의 사랑을 이렇게 형용할 것이다. 표피적이고 가식적인, 너무나 예의바른 “무도회의 사랑”이라고.


이쯤 되면 서로에게 실망할 가능성이 농후한 조합도 대략 점쳐볼 수 있다.

쌍둥이자리와 물병자리는 전갈자리와 게자리와의 사랑에 주의를 요한다. 쌍둥이자리는 숨이 막힌다고 진저리를 치고,물병자리는 자신의 독립성이 훼손 당한다고 느끼며, 전갈자리와 게자리는 일생 일대의 지극한 사랑이 조롱당했다는 생각에 눈물을 삼킬 것이다.


양자리와 염소자리의 사랑도 서로에게 실망을 주기 십상이다. 뜨겁게 돌진하려는 양자리의 심장에
염소자리는 번번이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양자리는 염소자리의 심장을 할퀼 수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황소자리와 물병자리의 사랑은 또 어떤가. 물병자리는 황소자리가 중요시하는 일상적인 욕구들을 하찮게 여기고, 황소자리는 물병자리의 무정함에 뼛속 깊이 서운함을 아로새기게 된다.


만나서는 안 될 커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세상이 소란한 것은 어쩌면 모두 이 잘못된 만남들 때문이 아닐까?


****앞에서 말했듯이, 사랑이 개성적인 것은 너무나도 개인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를,때로는 감동적으로 때로는 참혹하리만큼 적나라하게 깨닫는다.
사랑은 우리가 어떤 인간인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밤새워 하는 고민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런 말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왜 나인가?”,
“너는 왜 너밖에는 될 수 없는가?”


이 질문은 , 너무나도 이질적인 대상을 사랑하고만 여인들에게 (물병자리와 전갈자리의 조합처럼)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없는 개성을 기꺼이 소화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를 끌어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고기 지느러미 대신 두 다리를 얻어야 하는 인어 공주의 고민을 닮았다.


“부디 그들에게 용기를!”


어쩌면 세상에 그나마 평화가 존재하는 까닭은, 사랑하기 위해 자기의 정체성마저 스스로 허물도록 만드는, 이 잘못된 만남 들 때문이 아닐까?



김은하- 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