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6:02

쌍둥이자리의 유쾌한 사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사랑을 장난질 하는 쌍동이 자리들



때가 무르익었다. 그 동안 머리통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발효시켜온 < 서양 점성술의 눈으로 본 바람둥이 보고서 >를 끄집어내, 독자 제위께 시식을 청할 때가 되었다는 소리다. 그게 무슨 경천동지할 이론이라고 때가 무르익고 자시고가 다 필요하냐고 시껍한 눈길을 보내신다면( 못 말리는 나의 컴플렉스여! ), 진작에 두 명의 국가 대표급 바람둥이를 선보였고 이번에 쌍동이 자리로 그 난봉꾼 리스트를 마감하니, 차제에 그 셋을 두루 비교 검토하여 모종의 '최종 분석판' 같은 걸 읊조려 볼 타이밍이 아니겠냐고 볼멘 항변을 늘어놓겠다.


그걸 다 들으려면 귀가 따가우실 테니, 그만 못 이기는 척 나의 바람둥이 보고서를 향해 기대감이 마구 부풀어 오른 듯한 표정을 지어주시길. 그러면 표정이 어느정도 완성되었다고 믿고 이야기의 본론으로 넘어가겠다. 그러니까 옛날 옛날에...


세 명의 바람둥이가 살았다. 선수라든가 작업이라든가 하는 용어가 바람둥이 사전에 오르기도 훨씬 전이니, 그들은 글자 그대로 어느 겨울나라에 일찍 당도한 제비들처럼, 사람들의 편견이나 조롱이라는 뭇매를 달게 맞으며 이 동정 없는 세상에 거침없는 사랑의 철학을 일구었다. 그들은 맨몸으로 이 얼어붙은 세상을 끌어안고 온기를 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하나같이 과격한 실천가들이었지만, 개성이나 방식은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을 지경으로 달랐다.


먼저 사수자리 난봉꾼. 그는 바람둥이 계보에 있어서 전형을 확립한 인물로 꼽힌다. 일전에 말했다시피, 물 긷는 아낙을 보면 물동이를 들어주고 싶고, 근심하는 여인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 닦아주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지다 보니, 나중에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게 바람피운 셈이 되더라는, 참으로 둘러대고 눙치기도 잘하는 스타일의 소유자. 좋게 말하면 호방한 자유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 넓게 붕붕대고 돌아다니는 실속 없는 위인이다. 지금도 그들은 '매독이 무서워 정을 못 주랴'는 무서운 낙천성으로, 세계를 주유하며 국경과 민족, 인종을 사랑으로 한데 뒤섞는다. 이 호방한 난봉꾼을 누가 미워할 수 있으랴.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화냥기 찰찰 넘치는 물고기자리 여인이 새침하게 쏘아붙인다. ( 노파심에서 말해두자면, 지금 나의 묘사는 어디까지나 바람둥이의 원형으로서의 물고기자리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사수자리를 남자, 물고기자리를 여자처럼 묘사하는 것은 사수자리가 양성궁, 물고기자리가 음성궁이라는 기질을 갖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서양별자리에도 동양의 음행오행과 거의 유사한 체계가 존재한다. )


아무튼 그 여자는 속삭인다. " 마구 돌아다니면 뭐 하나요? 바람둥이의 자질이란 사랑의 함량으로 결판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그래, 맞는 소리다. 사수자리가 사람들의 심장에 불어넣고 다니는 건 엄밀한 의미에서 활력이지, 사랑이 아니니깐. 하지만 그래 봐야 바람둥이는 바람둥이. 사수자리가 여러 애인들을 스치며 말달린다면, 물고기자리는 마치 미꾸라지처럼 (표현이 좀 그렇군요) 놓아주지 않으려는 애인들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버린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드레날린이라든가 도파민이라든가 하는 황홀감 조장 신경물질이 공급되지 않으면 금세 목이 마르고 숨이 턱턱 막히기 때문에, 일단 맥이 빠지기 시작한 연애는 한시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 그래서 예수께서도 남편을 여섯 가진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주는 샘물을 마셔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 물고기 자리들이여, 신의 사랑이어야 하는 것이다. )


목마른 물고기자리들은 다른 희생자를 찾아 나선다. 적극적인 사수자리와 달리 그 방식은 지극히 수동적이다. 그들은 쥐덫이 쥐를 좇아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격언을 금과옥조로 삼아, 땀 하나 안 흘리고 사람을 꼬여낸다. 가장 능동적인 움직임이라야 눈꼬리를 치는 게 고작. 그런 점에서 그들은 연애애의 천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불치의 연애 중독자라고 해야 옳다.


사랑은 물고기자리에게 있어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의존성 정신활성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 마구 먹다가, 이를 몽땅 썩게 하고야 만다.


"쯧쯧,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가끔은 양치질도 하고 입안도 헹궈내야 한다니까!" 어디선가 메마른 핀잔이 날아와 박힌다. 이 또랑또랑하고 경쾌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번째 바람둥이, 쌍둥이 자리. 이 엽색가는 앞서 두명과는 정말이지 노는 물이 다르다.


사수자리와 물고기자리의 사랑이 가장 이상적인 경우 각각 구도와 구원이라는 높이 혹은 깊이를 획득하게 되는 것과는 달리, 쌍둥이 자리는 그런 심원한 차원은 애당초 꿈도 꾸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코웃음 친다. 사수자리가 추구하는 거룩하고 원대한 사유는 너무 멋대가리 없이 크고 잔재미가 없다며 답답해하고, 물고기자리가 보여주는 미묘한 정서와 신비, 호소력 따위는 구질구질하며 감상적이라고 지겨워한다. 그들은 말괄량이 삐삐처럼, 코를 후비며 퍼질러 앉아 농담 따먹기나 계속하고 싶을 뿐이다. 상대의 정서를 이해할 마음은 눈곱남큼도 없다.


그들은 열두 별자리 중 가장 사랑을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연애는 왜 하는 것일까?

좀 기가 막힌 이유 같지만 그들은 '수다를 떨고 싶어서' 연애를 한다. 그들의 사랑은 '대화의 욕망' 그 자체다. 쌍동이 자리의 사랑은 흔히 전화선을 타고 태어나, 채팅으로 무르익고, 이메일로 종료된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흥미롭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과, 서로의 흥밋거리를 꺼내놓고 재담의 만찬을 벌임으로써, 한층 더 흥미로워진 흥밋거리들 속에서 배가 아프도록 깔깔대는 일이다. 그들은 뭔가 흥미를 끄는 것 앞에서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호기심으로 재잘대고, 곁눈질하고, 촐싹댄다. 미운 일곱 살 같다.


맞다. 그들은 미운 일곱 살이다. 쌍둥이 자리는 사람의 일생 중에서도 취학 연령기의 기질과 상응한다. 그 시기의 키워드는 호기심과 장난기,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행어를 줄줄 외우기 시작하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별별 기발한 욕들을 배워와 어른들을 질겁하게 만들고, 지렁이를 토막내고는 언제까지 꿈틀거리나 신기해하는 바로 그 시기의 기질 말이다. 그것은 도덕에 아랑곳하지 않는 순수한 호기심이다.


세상엔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은 한시도 가만 있을 수 없다. "엄마, 저 아저씨는 왜 머리가 벗겨졌어?" "왜 사람은 밥을 안 먹으면 죽어?" " 아기는 어디에서 나와?" 아아, 이렇게 산만하게 쉴새없이 쏘아대는 질문에는 누구도 정신이 나가고 만다. 하지만 그 덕분에 쌍둥이 자리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세상의 지식을 쌓아올린다. ( 나는 최근에 유월에 출산을 하면 똑똑한 아이를 볼 수 있다는 몇몇 아주머니들의 속설을 들었는데, 점성학적으로는 꽤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5월 말부터 6월 말까지가 쌍동이자리의 시기인데, 너무 산만해지는 것만 극복한다면 이들은 분명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많다.설령 공부는 잘 못해도, 말재간 하나는 똑 부러질 것이다. )


그들은 분명 지적이고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넓지만 얕고, 재미있지만 자잘하다는 흠이 있지만, 적어도 지식의 총량에 있어서는 그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마치 텔레비전 같다. 그는 아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장난기와 유머도 풍부하고, 변덕도 죽 끓듯 한다. ( 토크쇼 사회자를 보라. 눈물 자국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깔깔 웃는다. 오오, 이 사랑스러운 경박함이여! )


그들은 호기심을 쫓아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물고기자리처럼 헤엄치거나 사수자리처럼 말달리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끝내고 마는 것은, 그들이 너무 많은 것에서 쉽게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우물을 파지 못하고 늘 곁눈질한다. 흥미로우면 머물렀다가, 흥미가 다 하면 금새 날아가 버린다. 15초에 한번씩 돌아간다는 텔레비전 채널들 같다. 아닌 게 아니라 텔레비전은 쌍동이 자리 속성을 가장 많이 닮은 것이면서, 그들이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는 곳이고, 또 그것을 보는 모든 이들을 쌍동이 자리적 심리 상태로 통합시켜 버리는 희한한 괴물이다.


텔레비전은 우리를 웃게 하고, 유식하게 하며, 또 가볍게 만든다. 그 가벼움은 건조함과도 통한다. 이상하게 아무리 슬픈 이야기도, 텔레비전으로 보면 마치 '울고 짜는 구질구질' 처럼 되어버린다. 지나칠 정도로 '쿨' 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연애도 그렇다.

그들은 " 사랑해 " 라고 말하려다가 너무 감상적이라는 생각에 " 지금은 사랑해 " 라고 말하고, " 보고 싶어 " 라고 말하려다가 " 보고는 싶지 " 라고 눙친다. 가볍게. 무겁지 않게. 언제나 산뜻하게 날아갈 수 있도록. 왜냐하면 책임지는 건 너무 따분한 일이고, 사랑이란 그것에 기대하지 않을 수록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니까.


그들은 " 거짓말이라도 좋아. 사랑한다고 말해줘 " 라고 속삭이며 자기의 사랑을 조롱한다. ( 이것은 쌍둥이자리에 토성이 있는 내 입버릇이기도 했는데, 나중에 소설가 은희경 씨의 작품에 토씨도 안 틀리고 등장해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 쌍둥이 자리들의 이심전심일까. 참고로 그 작가의 작품세계는 고도로 쌍둥이자리적이다. )


그렇다면 이제 쌍동이 자리들의 마지막 인사법을 배워보도록 하자.


" 피차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말기로 하자. "


그래서 그들의 연애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유쾌해 진다.
사랑 따위는 믿지 않으니까.



글- 페이퍼 김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