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5:26

사수자리의 뜬구름잡는 사랑

사수자리의 뜬구름잡는 사랑

-나는 편력한다. 사수자리의 뜬구름 같은 사랑, 그 정처없음에 대하여...

사수자리라니. 생각만 해도 바람냄새가 난다. 나는 대번 빛 바랜 사파리 모자에 헐렁한 올리브 그린 셔츠, 구겨진 카고팬츠, 여러 나라의 땀과 공기로 얼룩진 륙색을 멘 그런 남자가 떠오른다. 물론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원래 색깔을 짐작할 수도 없게 된 그의 구두도 빼놓을 순 없겠지.


아주 이상적인 경우 그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로버트 레드포드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았겠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그러나 마치 예정된 수순(?)을 밟듯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음, 갑자기 사방에서 돌던지는 소리가... 하지만 신경 끄시라. 내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내가 주인공인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허술하고도 싱거운 웃음을 지으며 내게 길을 묻는다. 그러면 나는, 아아... 입술로는 정해진 답을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그만 다른 말을 하고야 말 것 같다. 이 서글서글한 눈빛과 편안하며 때로는 능청스럽기까지 한 미소를 가진 남자에게. 그것이 얼마나 지혜롭지 못한 일인 줄 알면서도.


그는 오래 머무르지 않는 사람인데. 그가 돌아갈 집은 "길"자체인데. 그래서 나는 두 남자와 모두 사랑을 나누고 그 대가로 두고두고 가슴이 아프게 된 메릴 스트립처럼 상처 입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건 아니다. 앞의 두가지는 맞겠지만 끄트머리는 다르다.


나는 사랑의 상실감보다는, 그와 나눈 아름다운 경험과 경험이 확장시켜준 나의 세계에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의 사진과 편지를 나의 나머지 여러(!) 애인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흐뭇하게 간직할 것이다. 그 사랑이 내게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밑천으로 더 많은 사람을 경험하리라.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세상은 넓고 사랑할 남자는 지천이다. 나는 세계를 떠돌며 사방으로 활을 쏘아댈 것이다. 영원히 길 떠나는 그 남자처럼 나도 사수자리인 것이다.


그간 꼼꼼히 읽어준 독자라면 의아해 할 것이다. 자기가 물고기 자리라고 한지 석 달도 안 되어 사수자리라고 말을 바꾼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참에 한번 더 짚고 넘어가자면, 서양 별자리는 태양계 10행성의 위치와 그것들의 상호각도까지를 근거로 삼는다. 여러분이 태양의 위치 한 가지만을 자기 별자리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말이다.


예를 들자면, 나의 경우 태양은 전갈자리, 달은 염소자리, 수성. 금성. 목성. 해왕성은 사수자리, 화성은 물고기자리, 토성은 쌍동이자리, 천왕성과 명왕성은 천칭자리에 있다. 그래서 점성학적으로 말해 나라는 인간은

1) 사수자리이고( 별이 네개나 몰린데다가 사수좌의 수호성 목성이 떠오를 때 태어났기 때문에)
2) 물고기자리이며( 물고기자리가 아주 피곤한 각도에 있으며, 그 수호성인 해왕성이 나의 개성을 담당하는 태양 옆에 찰싹 붙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해왕성도 나의 태양 구실을 한다.)
3) 전갈자리이면서( 태양이지만 3등 밖에 못 하는 건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고 해왕성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태양이 있던 별자리만을 가지고 자신을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자기 별자리는, 자기 자신의 가장 하찮은 부분일 수도 있다.)
4) 염소자리이다. ( 달도 태양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 감정과 무의식은 염소자리처럼 딱딱하며 강박적이다. 내 글이 어딘가 마른 빵을 물 없이 꾸역꾸역 삼키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면, 맞다! 그건 염소자리 덕분이다. 달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끈질기게 배후에서 작용한다. 우리의 무의식이 그렇듯이.)


그러니까 나의 정체성을 "결정적으로" 만드는 별자리만 네 가지다. 그러니 내가 태양의 위치 하나만을 가지고 내 본질을 해명해 보려고 했을 때 얼마나 속이 터졌겠는가? (사수자리는 원래 성미도 급하다.) 별자리만 보면 "운동선수 기질"운운하고 나오는데 아주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여러분 못지않게 별자리가 "바부탱이"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여기서 질문. 태양의 위치밖에 모르는 여러분이 자기의 나머지 경향을 알아내는 방법은?

인터넷 www.halloran.com으로 들어가 Astrology For Windows라는 곳에서 점성학 공짜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몸소" 알아낸다. ( 속 시원해 보이기는 하지만 막상 하려면 손발의 수고가 많고 사람에 따라 머리에 쥐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법을 쓰나보다. 그게 뭐냐고?


그것은 나에게 메일을 보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정말 손쉽고 간단한 방법 아닌가. 게다가 가까운 측근(?)에 따르면, 그녀는 몹시 칭찬에 취약하기 때문에 약간만 살살 간지럽혀도 입에 거품을 물다시피 하며 별자리 이야기를 늘어놓고, 출생천궁도(태어난 시각의 10행성 배열표)를 뽑아주마 장담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사수자리의 문제다. 사수자리는 활력과 낙천성, 자비와 이해심을 키워드로 하기 때문에, 거절을 한다든가 하는 것은 별로 체질에 맞지 않아 한다. 그들은 들떠서 붕붕거리고 돌아다니며, 세상과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을 성장시키며 북돋아 주고 활력을 불어넣고자 할 뿐이다.


시원시원하고 너그러운 제우스(사수자리의 전형)가 그랬던 것처럼, 물 긷는 아낙을 보면 물동이를 들어 주고 싶고, 처녀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면 쓸어올려주고 싶고, 근심하는 여인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을 보면 닦아주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진다. 특히 그녀가 아름답다면 더더욱.


물론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애는 사랑을 낳고, 사랑은 많은 자식들을 낳는다. 위대한 난봉꾼 제우스도 신의 세계를 자기 자식들로 채우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만난 처자식들에게 제우스가 과연 책임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책임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임을 지는 일에는 늘 갑갑해했으며, 최소한으로만 책임졌다. 바로 나처럼.


약속을 했다 하면 늘 버스가 가장 신나게 달릴 때를 기준으로 시간 계산을 하기 때문에( 못 말리는 낙천성이다.) 늦기 십상이고, 목표를 세울라치면 가장 이상적인 수준이 아니면 발동이 안 걸리기 때문에 턱도 없는 포부를 가지고 ( 우리 사부님 말마따나, 점성학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 마법 유학을 가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누가 해달라는 것이 있으면 "별 것도 아닌데" 싶은 생각에 여유를 부리며 여기저기 약속을 해대는 통에 나중에는 약속이 첩첩이 쌓이고 엉겨 숨이 차게 된다. 지금 내 꼴이 서서히 그리로 가고 있다. 왜냐면 별자리 봐주겠다고 약속을 한 사람만 스무 명을 넘기 때문이다. ( 하지만 걱정 마시라. 착실하고 책임감 강한 내 염소자리 달을 믿어보자. 아니, 이것도 지나친 낙천성인가.)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사수자리는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고 너그럽고 겉치레가 없다. 그래서 종종 이런 대화가 벌어진다.


사수자리: 예전에 내가 기타리스트를 사귀고 있을 때 말이야....
애인: 작곡가라고 하지 않았어?
사수자리: 작곡가는 기타리스트 다음에, 그러니까 고시원 총무랑 사귀기 전에 만난 사람이고.
애인: 그럼, 또 있었단 말야? 넌 도대체 남자가 몇 명이야?
사수자리: 고작 한 명 늘어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예민해해? 거기서 거기구만.


여러분의 예상대로 사수자리는 아주 좋은 연인이지만, 아주 좋은 배우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눈은 늘 먼 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땅,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 경험해 보지 못한 철학을 향해 그들은 언제나 내달린다. 사랑은 정주하려고 하는데, 그의 모험심은 자유가 아니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그러니 "이러려면 왜 결혼했냐"는 불만이 상대방에게서 터져 나온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끊임없이 편력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이 구하는 것은 쌍동이자리의 짧고 아기자기한 지식이나 처녀자리의 꼼꼼한 세부적인 분석이 아니라, 보다 크고 심원하며, 추상적인 것, 말하자면 지혜, 라고 이름붙일 만한 것이다. 그들은 땅과 사람과 지식의, 이 끝과 저 끝을 정처없이 헤맴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마치 지혜를 구하는 사제들처럼.


원래 방황과 구도는 한통속이 아니던가. 괴테 선생님도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고 말씀하셨다시피. 신께서도 그들을 대견하게 보시고 "낙천성" 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은총을 선사하신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지만 생각해 보라.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데 그렇게 오래 떠돌려면 얼마나 낙천적이라야 하겠는가.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 먼지는 좀 앉았고 냄새는 좀 고약하지만 벌레만 몇 마리 건져내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어!


어떤가, 정말 낙천적이지 않은가.


글 - 페이퍼 김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