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5:38

천칭자리의 호화로운 사랑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기교적인, 너무나 기교적인 천칭자리의 사랑




" 사치는 과연 사치스러운 것일까?" 나는 얼마전 TV에서, 호주로 이주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어느 한인 부부의 얘기를 본 적 있다. 처음부터 본 것이 아니니 무엇을 해서 얼마나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비벌리힐스에 비견될 부자 동네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다고 진행자는 열을 올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실망도 그런 실망이 없었다. 음향공학적 설계가 안 되었던지, 실내는 별것 아닌 소리도 몇 배로 부풀려 공허하게 반사했다. 로코코 풍의 응접실은 상투적이나마 그럴 듯해 보였지만, 손님방을 비롯한 나머지 방들은 가구나 인테리어가 소박하다 못해 썰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커튼 하나하나에도 집주인의 무신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옷장을 열고 공개한 주인장 내외의 옷가지도 초라했다. 같은 디자인에 색상만 조금 다른 셔츠와 바지만이 빼곡했다. 의상이라는 말보다 '작업복' 이라는 표현이 적당해 보였다. 앞뒤 문맥상 '부유함'을 입증시켜줄 호사스러움을 기대했던 진행자는, 결국 공간이 무척 넓다는 말만을 거듭 강조하는 한편 대재산가 답지 않은 검소한 생활신조를 치하하는 것으로 집구경을 마무리했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좀 맥이 빠졌다. 맥이 빠지다 못해 주제넘게도 그 부자 내외가 불쌍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 놈의 '검소한 생활신조'로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돈만 가득 쌓아두고 쓸 줄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이 소박한 사람들의 가난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허영과 사치는 보통 비난받아 마땅한 악덕으로 분류되지만, 나는 이따금, 사치할 줄 모르는 인간이란 아름다움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릴 줄 모르는 맹꽁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치와 허영은, 사람들이 각자에게 허용된 아름다움 이상의 것을 넘보고 이를 소유하고자 할때 일어나는 '무절제 또는 방심' 이기 때문이다.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만 내 비루한 생은 종종 영국산 티포트나 포트넘 앤 메이슨의 망고 홍차 따위에서 구원받는다. 편지를 개봉할 때 쓰는, 너무나도 귀족적이지만 별 쓸모는 없는 나이프에 마음을 뺏겨 지갑을 열기도 한다.


생이 너무 누추해서 우리는 장식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치는 누추함 가운데서 우리를 끌어올린다. 티파니 보석들이 불러일으키는 달콤한 꿈이 가난한 창녀 오드리 헵번을 끌어 올렸듯이.


그래서 가끔 나는 너무 슬퍼진다.
" 왜 생은 아름답고 고상한 것들로만 채워질 수 없는가."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자 천칭자리가 일생동안 부딪쳐야 하는 숙제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오똑한 코를 갖지 못한 것, 청결한 치아를 갖지 못한 것, 길고 우아한 다리를 갖지 못한 것은 사람을 슬프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조용하게 내다볼 만한 창가를 갖지 못한 것도 슬픈 일이다. 그런 아침에 어울릴 만한 예쁜 슬리퍼가 없다는 사실도 그렇다.


너무 바빠서 아무 거나 챙겨입고 달려나가야 하는 아침은 나를 우울하게 한다. 나는 뛰면서도 생각한다. 이 핸드백은 바보 같은데. 블랙이 아니라 베이지색 스타킹을 신었어야 하는데. 그런 날 스타킹에 올이 나가기라도 한다면, 기분은 마구 구겨진다.


마치 근사한 파티에 참석한 기분으로, 또는 호젓하게 갤러리를 거닐 듯이, 인생을 그렇게 기품있는 걸음걸이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 꽃과 진주, 음악회를 사랑할 수 없는 생활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내 손에 물을 묻히지 않고서는 식탁이 차려지지 않는 일상도 서글픈 것이다.


겨울옷을 채 입지도 못했는데 봄이 와버렸다는 것. 입을 옷도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옷과 장신구와 가구와 그림들 뒤에 달린 길다란 숫자들도 내 가슴을 무너지게 한다. 특히 내 눈에 쏘옥 들어온 구찌 구두의 가격표란....(하지만 그것은 내발을 꼭 감싸주는 걸) 그러나 어쩌면 나를 가장 상심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신고 나설 만큼 근사한 약속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어떤 기분인지 여러분도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못 말리는 허영심만을 읽었더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천칭자리들은 다소 게으르고 다소 허영스럽긴 하지만, 그것은 우아하고 세련된 삶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균형 감각이다.


매사 너무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고, 너무 말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너무 책을 많이 읽어서 논쟁적이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모든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만한 교양이 있고, 너무 여성적인 것은 세련되지 못하기 때문에 삼가고, 너무 남성적인 것은 좋아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이 탁월한 균형감각.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조화와 균형' 이라는 아름다움의 필요충분 조건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러니 그들이 힘든 일을 꺼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당연하다. 너무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것이며, 그러므로 우아하지 못하고, 게다가 그들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수 있으니까.


이제 천칭자리들이 대단한 스타일리스트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매순간 천부적인 눈썰미로, 아름다움의 보편적 속성인 '황금분할'을 찾아낸다. 1:1.618 이라는 조화와 대칭의 포인트 말이다. 이를 테면 달걀의 가로세로비, 식물들의 잎사귀 간격, 조개 껍데기에 새겨진 나선무늬, 태풍의 소용돌이 운동,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의 형태 같은 것.


신의 작품을 모방한 인간의 예술에도 황금분할은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다빈치의 회화구도, 백제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교회 십자가의 가로세로비, 이집트의 피라미드, 바이올린의 몸체와 목 간의 비율 등등. 사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치고 황금분할이 쓰이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천칭자리들은, 그러한 황금분할이 의미하는 절충주의의 지혜를 외모에도 타고 나온다. 이말은 단순히 그들이 미남미녀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균형감각을 더한다. '잘생긴 여자와 예쁜 남자' 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러니까 여성은 너무 여성적이지 않으려고 하고, 남성은 너무 남성적이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의지'를 외양에서부터 보여준다고 할까?

그것은 천칭자리 예술이 만개했던 고대희랍조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전사들의 얼굴은 계집애처럼 매끈하고, 여신들의 얼굴은 미소년처럼 단단하다. 밀로의 비너스 상을 떠올려 보라. 불룩한 가슴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남신인지 여신인지 누가 알겠는가?


여기엔 이런 꾀가 들어있다. 남녀의 성징을 그저 즉각적이고 상투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반대편 성의 특징을 기교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본래 타고난 성의 매력을 더욱 증강시켜 줄 수 있다는 지혜. 아무리 무의식적인 지혜라지만 고도로 전략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성을 순직하게 드러내는 황소자리 남녀와 게자리 여자는 배울 일이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선머슴 같은 사수자리 여자, 그리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물병자리는 삼갈 일이다.


천칭이란 게 원래 그렇다. 반대편 저울에 무게가 생기기 전까지 그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다. 반대편 저울에 뭔가가 얹혀지고 나서야 그는 움직인다. 그는 기교적인 몸놀림으로 우아하게 균형을 잡는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입장과 태도를 정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하는 걸 봐서 결정하겠소. 이것이 천칭자리의 지혜다.


그는 주도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말하지도 않는다. 상대가 모두 털어놓게 한다. 그는 경청한다. 그저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상대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스스로 함정에 빠져 요구조건을 턱없이 낮추기도 한다. 그제야 천칭자리는 가볍게 응수한다. "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할까요? " 마치 선심쓰듯이 말이다.


이 감각을 잘 기억해두기 바란다. 이것은 교섭이나 협상 테이블에서 정말 유용한 자세다. 아마 이것을 잘 훈련한다면, 리어카에서 과일을 살 때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연습무대로 나쁘지 않다.) 과일 장수 아저씨는 자기도 모르게 값을 후려친다. 원래 이런 게임에서는 성미 급한 사람이 지는 법이다.


그러니 천칭자리들이 연애라는 이름의 시소게임에 얼마나 능한 사람들일런지는 불을 보듯 훤하다. 그들은 '아름다운 비례와 대칭' 으로 자신과 애인 사이를 '황금분할' 한다. 진정한 연애의 달인들이 그렇듯. 긴장하여 뻣뻣하게 굴지도. 탐닉하여 매몰되지도 않으며, 산뜻하고 우아하게 그것을 즐긴다. 그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를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좀 문제다. 연애란 그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즐기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줄여나가는 노력이니까 (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사랑이 실종되는 법칙은 여러분들도 알겠죠 )


그래서 거리가 없어지면? 천칭자리가 연애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소멸한다. 서로의 모습을 인식하고 즐길 수 있는 거리, 라는 것 말이다. 원래 아름다운 그림은 조금 떨어져서 봐야 하는 것이다. 얼굴을 바짝 들이대서야, 황금분할이고 색채이론이고 무슨 소용인가. 그들은 애인에게 가장 절실한, 일생일대의 질문을 던질 수도 없게 된다.


" 오늘 입은 이 옷 어때?"


...애인은 그들의 거울이다.


글- 페이퍼 김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