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5:57

게자리의 섬세한 사랑

사랑밖에 난 몰라

게자리가 부르는 그 흔한 사랑노래



사람들은 내가 모르거나, 일부러 외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안다. 게자리라고 해서 언제나 게자리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사자자리라고 해서 언제나 사자처럼 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삶이 우리에게 꾀를 주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개성은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 '숨은 동기'처럼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의 본질은 아주 급박한 순간에라야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쟁이 터졌다고 치자. 누구는 무조건 집으로 달려가 식구들 부터 챙기고(게자리), 누구는 바깥에서 전화만 때리고(쌍둥이자리), 누구는 대형할인점을 통째로 털어버리고(황소자리),누구는 PC방에 들어가 그 소식을 세계만방에 알린다(물병자리).


왜 그럴까? 그것은 도둑이 도망칠 때, 무의식적으로 심장을 감싸는 방향 - 그러니까 왼쪽 - 을 택한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저마다 감싸고 돌고 싶은 '자기만의 방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별자리라는 코드를 빌려 말해보는 것이고)


얼마 전에도 약간 그런 체험을 했다. 식구와 함께 온천장에 갔을 때였다. 수영복 입고 노는 데야 남녀가 함께 있을 수 있지만, 정작 때를 밀자면 남탕과 여탕으로 따로 들어가야 했다. 옷을 완전히 벗어야 하니까. 당연한 얘기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 탕에 들어갔다가 한 시간 뒤에 시계 아래서 만나자. 그런데 문제는 숯 사우나에 매료된 나머지 내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정말이다) 늦게 나갔다는 데 있다. 시계 아래에는,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남녀들만 웅성거렸다.


늦으면 절대로, 그리고 하나도 기다리지 않겠다고, 이 남자가 사전에 엄포를 놓았던 터라 낙심은 되었지만 한편으로 쉽게 포기가 되었다. 풀을 한두 차례 둘러보고는, 별로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여탕으로 직행했다. 나는 그저 이 사람이 화가 나서 다시 탕으로 돌아갔겠거니,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괜히 사람 찾느라 기운 뺄것 없이, 핸드폰 음성사서함에 몇 시에 나가자고 메모나 남기고, 사람 찾느라고 안내 방송이나 가끔 하면 대세에 지장 없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앙큼하게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둘러댔다.

" 내가 이러는 걸 그 사람도 원하고 있을 거야. 모처럼 왔는데 제대로 놀다 가야 하지 않겠어? "


그런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 인간은 내가 옥탕, 선녀탕, 한방탕, 쑥탕, 레몬탕을 옮겨 다니며 놀때, 추운 야외 풀을 누비며 세 시간이 넘도록 나를 찾은 것이다. 어차피 안내 방송은 잘 들리지도 않기 때문에 신청할 엄두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내 앞에 퉁퉁 불은 손을 들이밀었다. 으악! 손은 살갗이 쭈글쭈글하다 못해 너덜너덜해질 지경으로 물에 불어 있었다.


나는 그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그러면서 삐질삐질 변명 겸 항변을 늘어 놓았다. 내가 뭐 어린애냐, 타일 바닥에 미끄러져서 죽을 까봐 그랬냐, 도대체 세 시간 씩이나 찾고 있을 줄 몰랐다.... ( 핸드폰에 음성을 남긴다거나 하는 머리를 쓸 줄 알았다는 말을 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맞아 죽을 뻔했다. )


그는 마치 엄마가 잃어버린 아이를 찾듯이, 아이가 잃어버린 엄마를 찾듯이 나를 찾아 해맨 것이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만 맴돌며, 단순하고 미련하게, 객관적인 상황 파악 보다는 시간이 흐를 수록 감상적이 되어가지고는, 이 못 말리는 게자리 같으니라구. 그날 나는 쌍둥이자리였고 그는 지독히도 게자리였다.


이제 오래 묵혀 놓았던 페이퍼 이야기를 해야 겠다. 갑자기 게자리 이야기를 하다 말고 페이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맞다. 페이퍼가 게자리이기 때문이다. 잡지에도 별자리가 있냐고 어떤 분은 그러실 거다. 조금 아는 분이라면, 페이퍼 창간일을 기준으로 별자리를 본 거지요, 하고 넘겨짚으실지도 모른다. ( 물론 그것도 방법이다. )


하지만 그런 건 아니고, 이건 그냥 느낌이다. 도저히 게자리가 아니면 안 되는 가족적인 감수성이 페이퍼에는 팽배하다. 이렇게 눈에 빤히 보이는 걸 알아맞히겠다고 차트를 그려서야 점성가 꼴이 우습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 엄마가 진짜 우리 엄마인지 확인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을 떼보는 것과 같다.


그래도 증거를 원한다면? 좋다. 나는 먼저 그들의 얼굴을 증거로 채택해 달라고 신청하겠다. 그들의 얼굴에서 심상찮은 징후를 발견한 것은, 삼성동 페이퍼 사무실에 두 번째 방문하던 날이었다. 별점을 보다말고 나는 순간적으로 앗! 하고 놀랐다. 김원 이사부터, 정유희 기자, 김양수 기자까지 모조리 둥근 턱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둥근 턱은 몽글몽글한 살집과 아울러 게자리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들의 섬세함과 섬약함, 모성추구, 방어적인 취향이 고루 배려된 하드웨어랄까 ( 참고로 전형적인 게자리 미모로는 송혜교와 드류 베리모어가 있다. 또 미남은 아니지만 배창호 감독 얼굴도 상당히 게자리스럽다. )


실제로도 차트를 그려 보니까 이 세 사람은 모두 태양이나 달, 상승궁 같은 중요한 지점에 게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 황경신 편집장은 게자리가 아니라는 건가요? 미안하다. 성질 급한 당신이 이렇게 묻기 전에, 말해 주었어야 하는 것을..... 황경신 편집장의 게자리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페이퍼가 게자리라는데 확신의 도장을 찍게 해 줄 정도로 강하다. 외모의 스타일을 담당하는 상승궁이 게자리이며, 게다가 그 지배성 달이 중천에 높게 솟아 있으니까. 외모가 그리 게자리스럽지 않은 건, 워낙 깐깐한 그녀의 처녀자리가 자신의 외모가 둥글 넓적해지도록 방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그녀의 차트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녀의 인생과 페이퍼가 서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깊숙히 연루되어 있다는 암시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차트만으로도 페이퍼의 운명에 대해 말할 수 있겠다는, 그리고 그것이 페이퍼의 운명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 내가 본 운명의 속살을 약간만 말하고 넘어가겠다. 미리 당부하건데, 이것은 황경신 편집장의 개인 운세하고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 황 편집장의 개인 운세를 한 토막만 공개하면, 자식복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점성가로서 한마디 하자면, 돈을 몰고 올 자식이니 웬만하면 하나 낳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페이퍼는 공중에 뜬 달처럼, 사람의 무의식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가장 두드러진 잡지다. 천왕성과 각도도 좋으니 적어도 한 순간만은 '반짝'하고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질 것이다. 페이퍼의 역할은 말하자면 '감수성의 혁명'이다. 하지만 그 명성이나 대중적 인기가 그리 지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참신함은 알다시피 처음에만 유효한 것이니까. 그렇다고 별로 슬퍼할 필요는 없다.


페이퍼는 그 스스로도 세상의 떠들썩한 주목이나 인기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수성 자체가 '메이저'라기 보다는 '마이너'에 가까운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의 들뜬 관심이 어느정도 걷히고 나면, 페이퍼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실력자처럼 ( 악의 세계와 결탁한다는 의미는 아님 ) 배후에 군림하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천수를 누리리라.


그리하여 페이퍼는 게자리이고, 페이퍼의 애독자들도 게자리이다.
독자들이 게자리라는 단서는 두 가지 인데

(1) 내게 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들 중 가장 높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별자리가 게자리이다.
(2) 페이퍼로 오는 편지의 내용들은, 대개 게자리가 아니면 남사스러워서 도저히 쓸 수 없는 것들이다. ( 이렇게 말한다고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


솔직히 페이퍼에서 그런 편지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꽤 놀랐다. 단짝 친구에게도 하기 어려울 것 같은 얘기를, 그들은 생면부지 기자에게, 혹은 아무 것도 아닌 종이 책에다 대고 쏟아내고들 있었다. 이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이토록 털어놓게 만드는, 털어놔도 된다고 믿어버리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만약 페이퍼에 위대한 면이 있다면, 아마 그 불가사의한 힘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게자리의 힘이기도 하다. 나그네의 옷을 벗겼다던 이솝우화의 그 유명한 햇살처럼, 너무 친근하게, 너무 포근하게 가슴속을 파고드는 감성. 아무 것도 아닌데 마음 편한 내 방처럼, 내세울 것 하나 없어도 그냥 좋은 우리 엄마처럼. 게자리는 그들의 인격과 외모에 밴 포근한 젖가슴을 다해 (게자리 남자분들, 경악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가진 말랑말랑한 살집의 존재 이유는 이것이랍니다) 사람을 보듬는다.


그 사랑이 얼마나 섬세하고 감상적인 것인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사랑을 잃을까봐 얼마나 전전긍긍하는지, 두려움에 떠는지.


나와 같이 사는 게자리 남자는 가끔씩 이런 소리를 한다.
" 내가 다리가 부러져도 나랑 살 거야?"
" 그럼. 나랑 말은 할 수 있잖아."
" 그럼 벙어리가 되어도 안 버릴 거야?"
" 응, 글씨를 쓰면 되쟎아."
" 그럼 식물인간이 되면 어떻게 할 거야?"
" 그래도 안 버릴 거야."


" 거짓말... 거짓말..."


이상하다. 나는 절대로 안 하는 질문인데, 그는 한다. 나는 그래서, 내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그가 나를 포기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된다. 바보 같으니.... 나는 포기할 지도 모르는데


...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글- 페이퍼 김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