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 15:54

사자자리의 위풍당당한 사랑

너희 중에, 누가 가장 극진히 나를 사랑하느냐?

숭배자를 바라는 사자자리들


키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페이퍼의 상당수 독자 분들은 '손만 잡아도 얼굴이 화끈, 가슴이 콩닥' 수준의 '청소년 연애?'를 하고 계신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하려고 한다. 하늘이 낮아졌기 때문이고, 공기가 쌀쌀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주위를 잊기 위해 성냥을 긋듯이, 나는 키스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다. 키스는 따스하고 맛있을 뿐 아니라, 나같이 심장이 천천히 뛰는 사람에게는 천연 강심제 역할까지 해주니까. 기분이 살짝 아슬아슬해진다. 그래, 이건 연탄 난로나 귀뚜라미 보일러를 상상하는 것 가지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근사한 키스를 가지고 있는 별자리는 먼저 전갈자리, 물고기자리, 게자리다. 나는 전갈자리 60 퍼센트에 물고기자리 40 퍼센트의 조합을 최고로 꼽지만, 그거야 개인차가 있는 것이니 굳이 순위를 매기치는 않겠다. 그 다음엔 염소, 황소, (사수, 양, 천칭자리 - 순위가 같아요) 를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앞의 둘은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지만, 뒤의 셋은 엇비슷한 도토리 키재기다.


벌써 열두 별자리의 절반 이상을 말해 버렸으니, 나머지 네 별자리의 싱거움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처녀자리는 ' 이 키스가 과연 적절한 것일까? 혹은 ' 침은 삼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 등의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풀 먹인 옷감처럼 빳빳해져 있을 것이고, 쌍둥이 자리는 텔레비전 쪽으로 한눈을 팔거나 금새 하고 싶은 말이 생겨 '그런데, 잠깐만' 하고 상대의 몸을 밀쳐낼 것이다. 뭔가 우스운 생각이 떠올라, 애인의 입술을 문 채로 제풀에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고 말이다. 물병자리의 입맞춤은 묘하게 기계적이다. 친절한 안드로이드의 키스라든지, 선생님이 상장과 트로피를 건네면서 해주는 가벼운 포옹을 닮았다. 친밀감은 느껴지지만, 정서를 파고들지는 않는다.


이유는 앞의 세 별자리가 모두 ' 사고 기능 ' 을 담당하는 수성을 수호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좀더 차근차근 설명하자면, 이들의 정체성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거나 (처녀자리), 재치 있게 사고하거나 (쌍둥이자리), 독창적으로 사고하는 데 (물병자리) 맞춰져 있다. 키스는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온갖 생각들이 범람하던 머리통을 단숨에 하얗게 백지로 만드는 것인데 말이다. 이 수성의 아이들은 너무 맨정신이라서, 이성이 허물어지고 나야 더 잘 들리는 '영혼의 대화'에 참여하지 못한다.


아직 키스 못하는 별자리를 하나 더 말해야 한다. 이 안쓰러운 블랙리스트의 마지막 주인공은 사자자리다. 그런데 사자자리가 봉착한 어려움은 앞의 세 별자리들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것은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정열 탓이다. 아니, 정열도 문제가 되는가? 정열은 사랑의 연료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여기서 키스의 달인 전갈자리와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


" 아,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정열만 뻗치면 뭐합니까? 정열을 한 곳에, 그러니까 입술이건 손끝이건 한 점에 응축시켜야 하는데 사자자리는 그게 안 되는 겁니다. 무턱대고 사방으로 뿜어대기만 하죠. 키스는 내면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자기가 무슨 연극배우라도 되는 줄 안다니까요. "


어쩌면 영원히, 사자자리는 전갈자리가 손가락 끝을 10센티 움직이는 것만큼도, 애인에게 짜릿함을 선사하지 못할 것이다. 밀도가 없는, 안은 텅 비고, 바깥으로만 분출하는 키스, 관능에는 밀도가 중요하다는 리비도의 법칙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랑이, 웅변이나 달변일 때보다, 침묵 끝에 나온 눌변일 때 더 크게 울린다는 역설과도 같다. ( 여기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은, 후일 페이퍼의 자매지 옐로우 페이퍼가 창간되는 날 열두별자리의 진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소상히 드려드리고 싶군요. )


그런데 나는 사자자리 남자와 산다. 쉽게 말해 사자처럼 으스대기 좋아하고, 태양처럼 찬란하고, 위대하게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그런 남자다. 웃는 것도 사자 같고, 생김새도 사자 같다. 사자자리의 전형적인 생김새는 토이스토리의 우주용사 버즈를 생각하면 쉬운데, 딱 그렇게 생겼다. 위풍당당한 몸집에 넓은 어깨, 둥글고 큰 얼굴, 또한 나는 사수자리의 외양을 하고 있으며, 거기 나오는 우디 보안관을 닮았다.


이렇게 말하면 '우주용사 버즈에 보안관 우디니까 괜찮은 궁합이겠다' 고 생각하실 만하다. 물론, 일단은 그렇다. 하지만 겉으로는 사수자리라도 나의 내면은 전갈자리(태양)과 염소자리(달)이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사자가 우람하게 포효를 하면 전갈이 " 왜 목에 힘주고 야단이람?" 하면서 차갑게 쏘아붙이고 ( 전갈은 알아주는 독설가들이다. ), 사자가 방만하게 굴라치면 염소자리가 꼬장꼬장하게 쌍지팡이를 짚고 나선다. " 일어났으면 이불을 개야지? " " 게임 좀 그만해. 게임으로 세월 다 보내겠다!"


그러면 나의 사자는 꼭 이런다. "너는 꼭 내가 이불을 개려고 하면 그러더라. 나는 그런 말 들으면, 꼭 니가 시켜서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하기가 싫어진단 말야."


세상에! 이게 삼십대 중반을 향해 가는 사람이 할 소린가?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 아니 자기가 나이가 몇 살이야? 시켜서 한 거 같아서 싫다니. 그런 건 애들 때 하고 마는 짓이지. 당신이 지금 어린애야?"


그런데 사자자리는 덩치 큰 어린애다. 태양은 얼마나 늠름하면서도 어린아이같이 천진한가. 왕은 얼마나 위엄 있으면서도 어린아이같이 단순한가. 그들은 똑같이 말한다. 나를 보라! 내가 한 것을 보라! 어른들을 빙 둘러 앉히고, 노래와 율동으로 그들에게 온갖 찬사를 받던 어린 날의 기억을 그들은 영혼의 일부로서 간직한 채 살아 간다.


그러므로 사자 다루는 법의 제 1계명은, 절대로 절대로 비난을 하지 말 것. 꼭 해야 할 지적도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이듯, 찬사로 똘똘 말아서( 말 그대로 사탕발림하여 ) 입 안에 넣어줄 것.


그래서 나는 요즘 아예 간신배처럼 '칭찬합시다'로 나섰다. " 우와, 자기는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해? " " 그렇게 입으니까 진짜 나만 보기 아까운 인물이다!" " 이야, 설거지도 깔끔하게 하고 못하는 게 없네!" 하도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약발이 떨어져서, " 너 지금 나를 능멸( 정말로 이런 단어를 쓴다) 하는 거지? 하고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지만, 사자는 원래 거짓 칭찬에도 너그러운 사람들이다.


왕은 간신은 간신대로, 충신은 충신대로 사랑하는 법이니까. 어쨌거나 모두 자기의 말에 머리를 조아리는 백성 아닌가. 왕은 마다할 까닭이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임금다운 도량과 배포니까.


그 도량과 배포는 연애 스타일에서도 나타난다. 한번은 그 사자가 내게 무슨 말을 했느냐 하면, 자기의 가장 이상적인 결혼관은 옛날 임금이 그랬듯이 처첩을 열명 정도는 거느리고 사는 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으례 품는 환상처럼 느껴졌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 마음 속에는 아무리 뒤져봐도 남자 열명을 데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증거로, 나는 그런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것이다. 그래서 고백하기를, 나의 가장 이상적인 결혼관은 그저 소박하게, 한번에 두명 이상은 두지 않으면서, 평생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며 사는 일이라고 말해줬다.


그날의 대화는 실현되기 어려운 서로의 이상을 위로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아무튼 사자자리 연인을 둔 사람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왕과 같아서 찬사를 바치며 다가오는 이성을 물리치기 어렵다. 어린아이가 사탕을 주고 꾀는 사람을 따라가듯이 말이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는 사자자리의 두 전형이 나온다. 왕도 나오고, 어린이도 나온다. 그 둘은 알고 보면 똑같은 사람이다. 왕은 ( 간신들의 말을 ) 곧이 들었고, 소년은 곧이 보았다. 그런데 누구는 바보가 되고, 누구는 영웅이 되었다. 이것이 사자자리가 가진 두 얼굴이다. 사자자리의 내면에는 좋은 왕과 나쁜 왕이 함께 산다. 나쁜 왕은 사치스럽고, 거드름을 피우고, 칭찬만을 바라고, 자기만 최고인 줄 안다. 폭군 네로처럼 시를 쓴답시고 로마시를 불태우는 가 하면, 어리석은 리어왕처럼 세 딸을 앉혀놓고 묻는다. " 너희 중에, 누가 가장 극진히 나를 사랑하느냐?" 그는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좋은 왕은 대범하고, 위엄 있고, 용감하고, 관대하다. 또 지혜롭다. 그 지혜는 비겁하거나 꽁수를 쓰지 않는 데서 나온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소년은 얼마나 단순한가. 그는 본 대로 말했을 뿐이다. 주관적인 감정이나 판단이 작용하기 이전에 - 그랬다면 군중에 합세하여 ' 없는 옷'을 지어냈을 테고 -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을 보듯이 투명한 눈으로 본 것이다. 나는 " 임금님은 벌거숭이야!" 라는 소년의 외침이, "산은 산, 물은 물" 이라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투명한 시각을 회복하는 것. 어쩌면 지혜는 단순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지 않고는 천국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참, 그런데 사자자리의 바보같은 키스는 어쩌냐고? 처음엔 황당했지만, 그 남자가 게자리도 만만찮게 발달했다는 걸 알고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제발 게자리처럼 해줘. 사자처럼 하지 말고.......



글- 페이퍼 김은하